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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총장연설문


2024학년도 봄 개강미사 강론

  • 작성자 :비서실
  • 등록일 :2024.04.04
  • 조회수 :128

(2024.3.19. 화, 콘서트홀 오전 10시)


독서: 욥기 1,13-15, 17-22

복음: 마태 16,24-27


개강미사 강론


오늘 강론을 시작하면서 여러분에게 오페라 아리아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우선 한번 들어볼까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흘렀다오.

내가 무엇을 더 원할까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오.

그녀의 가슴 뛰는 것을

내가 한순간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내 숨결이 그녀 숨결과 섞일 수 있다면,

하느님,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방금 들으신 아리아는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제티(Donizetti, 1797-1848) 오페라 『사랑의 묘약』 2막 2장에 나오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입니다. 이탈리아 시골의 한 젊은 농부 네모리노는 아름다운 지주의 딸 아디나를 짝사랑합니다. 네모리노는 수다쟁이 약장수 설명을 듣고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사랑의 묘약’을 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던 그는 약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아디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아디나의 눈물이 자신을 향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네모리노는 아리아를 부릅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느님께 고하는 내용입니다. 아디나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마음이 온전히 드러난 서정적이고도 아름다운 아리아입니다.


『사랑의 묘약』은 1832년 밀라노에서 초연된 이후 오늘날 세계 여러 도시에서 무척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가 되었습니다. 도니제티는 롯시니, 베르디, 푸치니와 함께 오늘날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도니제티가 이 오페라를 작곡하는데 불과 2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그는 타고난 천재 작곡가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도니제티 개인의 인생사를 보면 정말 참담할 정도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사랑의 묘약』을 발표하기 4년 전인 1828년, 도니제티는 결혼했습니다. 이후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만 자식들은 하나 같이 낳은 지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의 묘약』은 자식이 처음으로 세상을 떠나던 그 무렵에 작곡되었습니다. 아내도 결혼한 지 9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을 사랑해 주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그는 완전히 외톨이였습니다. 작곡가였지만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도니제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후, 아내가 사망할 때까지 9년 동안 그는 마흔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이는 평생 작곡한 오페라 숫자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그의 오페라 중 최고라고 인정받는 오페라 대부분은 이 시기에 작곡된 것입니다. 그가 작곡한 아리아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깊이 울리는 것 그것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은 작곡가가 한 인간으로서 체험한 고통의 깊이에서 온 것입니다.


도니제티는 1797년 11월 29일 밀라노 동쪽의 베르가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나흘 후에 집 근처에 있는 산타 그라타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도니제티가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작곡가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것은 그가 가진 신앙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욥(욥기 1.13-22)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욥에게는 아들이 일곱, 딸이 셋이 있었습니다. 재산으로 따지면,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쌍이나 있는 큰 부자였습니다. 어느 날 욥의 아들딸이 모두 모여 형의 집에서 잔치를 벌이며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찬 바람이 폭풍처럼 불어와 집이 무너졌고 이 사고로 자식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적들이 몰려와 가축들을 모두 약탈해 갔습니다. 욥은 졸지에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알거지가 된 것입니다. 그때 그는 머리를 깎고 땅에 엎드려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욥 1,21)


그런데 욥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옵니다. 이번에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부스럼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온몸에 악성 피부병이 생긴 것입다. 그의 아내는 욥에게 하느님을 저주하라고 했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았으니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욥 2,10)


욥 역시도 한 인간으로서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으련만”(욥 2,11) 하며 속상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욥은 근본적으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는 결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그의 믿음을 지켜보신 하느님께서는 욥의 여생에 지난날보다 더 큰 복을 내리십니다. 양 만사천 마리,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마리, 암나귀 천 마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욥은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다시 얻었습니다.(욥42,10-17)


세상에 시련과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인생은 시련의 연속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인생 최대의 시련은 죽음일 것입니다. 늙고 병들어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야 할 때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위기의 순간은 우리 모두 예외 없이 겪어야 할 시련이자 고통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순간 욥처럼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 모든 것을 잃거나 버리고 포기해야만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욥처럼 하느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신뢰하면 든든해지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우리가 그분의 전능함을 믿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죽음의 순간 고통과 절망의 순간까지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매년, 스페인 산티아고에 백 명의 학생을 보냅니다. 그것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걸어야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진리를 배우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처음에는 누구나 발에 물집이 잡혀 고생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배가 고플 때도 있고 힘들게 산길을 올라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너무 더울 때도 있고 비가 올 때도 있습니다.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당장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내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면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됩니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날아갈 듯이 기쁜 이유는 이런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목표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마치 인생길의 축소판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예외 없이 세상에서 각자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마태 16,24참조) 그런데 그것을 피하거나 그것에서 도망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고 더 고통스러워집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로 여기면 그 순간부터는 그것이 인생에 ‘기쁨과 희망’을 주고 인생의 의미를 찾게 해줍니다.


작곡가 도니제티의 인생, 욥의 신앙,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를 통해서 얻어야 하는 교훈은 우리 인생의 시련과 고통 앞에서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갈 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찾는 대학’ 가톨릭대학교에서 이번 학기 ‘기쁨과 희망’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