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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총장연설문


2023학년도 개교기념미사 강론

  • 작성자 :비서실
  • 등록일 :2023.06.01
  • 조회수 :581

(2023.5.25.11시, 콘서트홀)

독서: 요나 1,1-4, 2,1-2, 2,11-3,4

복음: 마르 12,28-31 가장 큰 계명


강 론


가톨릭대학교는 1855년 충청도 베론 신학교에서 교회에 필요한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 라틴어, 신학, 철학 등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 168주년 개교기념일을 맞아서 우리 대학이 가야 할 길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며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오페라 아리아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빈첸초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제1악장에 나오는 「정결한 여신」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정결한 여신」은 로마 시대 갈리아의 총독 폴리오네와의 금지된 사랑에 빠진고대 종교의 여사제 노르마가 밤하늘에 떠 있는 달 앞에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노르마가 ‘정결한 여신’ 달에게 바치는 기도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로마군과 싸우기 위해 전쟁터로 떠날 군인들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폴리오네가 자기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근엄하면서도 애틋하고 풍성하면서도 가련한 칼라스의 목소리와 연기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탁월합니다. 인간의 슬픔과 그리움을 그녀만큼 아름답고 서정성 있게 표현한 소프라노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뉴욕 맨해튼에서 그리스계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열세 살 때 그리스로 건너가 아테네 음악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녀는 거기서 고난도의 고음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구사하는 벨칸토 기법을 익혔습니다. 


1949년 1월경 그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극장에서 바그너의 한 오페라에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극장의 지휘자가 칼라스에게 특별한 제안을 합니다.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의 공연 예정이었던 소프라노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출연할 수 없게 되었으니 대신 출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극장에서 예정된 오페라 공연이 세 차례나 더 남아 있었던 칼라스는 이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우선 『청교도』의 악보조차 본적이 없었고 한 오페라에 출연하면서 또 다른 오페라를 동시에 준비한다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휘자는 칼라스에게 거듭 제안합니다. “나는 당신이 이것을 잘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휘자의 거듭된 제안에 칼라스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날부터 그녀는 한편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청교도』의 악보를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엿새 후에 『청교도』에 출연했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벨칸토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보였습니다. 이로써 칼라스는 오페라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성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칼라스처럼 거절하고 싶은 상황, 도망가고 싶은 상황, 포기하고 싶은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거절하느냐 받아들이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며칠 전 체육관에서 트레이너와 함께 복근 운동하는데 너무 배가 아파서 고만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트레이너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그 순간을 넘겨야 근육이 생깁니다.” 우리가 시험공부 할 때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돼서 덮어 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비를 견디고 어려운 그 순간을 넘겨야 중요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중에 어려운 부분을 마주쳤을 때 그것을 피하느냐 아니면 도전하느냐 하는 것이 시험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가장 힘든 순간, 도망가고 싶은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 거절하고 싶은 순간이 바로 내가 변화 할 수 있는 순간이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출생률과 인구의 감소는 대학의 입학 경쟁률을 떨어뜨리는 큰 요인이 되고 있고 수도권에 있는 우리 대학도 안전하다 할 수 없습니다. 대학 등록금의 인상이 지난 15년 동안 동결되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대학의 살림을 어렵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 대학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이 힘든 시기야말로 우리 대학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대학들이 허리를 졸라맬 때 우리 대학은 기숙사를 지었습니다. 재정이 어려운 가운데도 우리 대학은 과감하게 첨단학과를 여럿 신설했고 지난 6년 동안 성심교정에 교수를 백이십여 명 넘게 충원했습니다. 대학의 입학 경쟁률이 대부분 떨어질 때 우리 대학의 입학 경쟁률은 작년과 올해 지난 10년 치 경쟁률을 경신했습니다. 이 모두 우리 대학에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대학이 가야 할 길은 우리 대학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855년 베론 신학교에서 처음으로 가르친 신학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에 관한 학문으로서 하느님 사랑의 역사를 가르칩니다. 1954년에는 의과대학이 설립되었고 우리 대학 역사상 두 번째로 의학을 가르쳤습니다. 의학은 인간의 몸을 치유하는 학문으로서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해주셨던 기적을 이 시대에 재현하는 학문입니다. 신학이 하느님 사랑을 가르친다면 의학은 이웃 사랑을 가르칩니다. 1995년에는 우리 대학이 성심여대와 통합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학은 하느님, 인간, 자연을 포괄하는 모든 학문의 영역을 가르치는 종합대학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대학에서 첫 번째가 신학이요 두 번째가 의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그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이 우리 대학의 근본이요 학문적 바탕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학은 신학을 기반으로 하여 전통적으로 인문학이 중심이면서도 동시에 인간 세상에 기쁨을 줄 수 있는 의학, 의생명 과학, 약학, 생명 공학, IT와 인공지능 등의 첨단 과학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웃사랑에 바탕을 둔 첨단 과학은 시대적 요구일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이 추구해야 할 미래 방향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나 예언자는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는 주님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주님 말씀에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마리아 칼라스 역시 어려운 일임에도 결국 세라핀의 두 번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칼라스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누구나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나 거절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일에 구원이 있고 거기에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에게 가장 힘든 일, 거절하고 싶은 일, 도망가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 중에서 받아들여야 할 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첫째 계명 하느님 사랑과 둘째 계명 이웃사랑을 포기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 대학의 책임자로서 저는 대학 발전에 필요한 복음적 요청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힘들더라도 시대적 요구와 제안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