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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총장연설문


2023학년도 봄 개강미사 강론

  • 작성자 :비서실
  • 등록일 :2023.03.24
  • 조회수 :570

(2023.3.22. 10시, 콘서트홀)


복음: 마태 11,2-6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 

독서: 고린토 전 12,18, 20-26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개강미사 강론


어느 날 음악 잡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에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Felix Klieser)의 독주회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연주자는 팔을 대신해서 발가락으로 호른의 벨브를 누르며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의아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온라인으로 음악회 표를 구매했습니다.


연주회가 있던 날 일찌감치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 갔습니다. 피아니스트와 함께 무대 위로 걸어 나온 클리저의 모습은 양팔이 없어서 그런지 약간 왜소해 보였지만 당당했습니다. 그는 무대 중앙에서 청중에게 인사하고는 의자에 앉아서 구두를 벗었습니다. 맨발이 된 그는 능숙하게 왼발을 위로 올려 연주 자세를 잡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연주는 고사하고 다리 근육이 경직되고 경련이 날 것 같은 특별한 자세였지만 그의 연주 자세는 일상화된 듯이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클리저는 독일 괴팅겐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양팔이 없던 그는 일찍부터 호른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부모는 아들을 마을의 음악학교에 데리고 갔습니다. 호른을 연주하고 싶다는 클리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은 음악 교사는 다른 악기를 제안했습니다. 호른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힘센 호흡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기에는 클리저의 나이가 너무 어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폐활량과 관계없는 피아노나 타악기를 연주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에 대해 클리저는 이렇게 반응했습니다.“호른을 배울 수 없다면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겠습니다.”다행히 학교는 그의 뜻을 수용했고 클리저는 그때부터 호른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네 살 이었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독특한 자세로 연주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열세 살 때부터는 하노버 음악·예술 대학에서 수학했고 졸업 후에는 독일의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발가락으로 연주하는 호른 연주자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연주회에서 클리저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호른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베토벤이 이 작품을 작곡했던 것은 1800년 인데 그보다 일 년 전인 1797년 베토벤은 처음으로 청각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곤욕스럽게 한 것은 증세가 호전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1802년 베토벤은 의사의 권유에 따라 휴양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6개월간 휴양을 했습니다. 거기서 그가 유서까지 작성했던 것을 보면 당시 증세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날 공연에서 클리저의 호른 연주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장애의 종류는 달라도 그가 작품 속에 담긴 베토벤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그 작품을 연주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족함이 없이 태어난 사람, 모든 것을 다 갖추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존재는 하느님 한 분 뿐입니다. 인간이 자신에게 있는 부족한 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보완하느냐 그 문제 해결 능력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만일 클리저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의 부족한 점에 초점을 두고 남을 부러워하기만 하며 살아왔다면, 그는 오늘날처럼 훌륭하고 당당한 연주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클리저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육체를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원하는 일을 찾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오늘의 그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이 청각 장애에 굴하지 않고 음악가의 길을 굿굿하게 걸었던 것처럼 클리저는 팔이 없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호른 연주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나’를 찾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 여건을 부정적으로 보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태어날 때의 내 모든 여건은 부정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내 나라와 내 부모, 집안의 경제적 여건, 나의 외모와 인지능력, 나의 신체 조건은 받아들여야 할 것들입니다. 비교는 나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자긍심을 가지고 내 장점을 찾는 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일은 나를 기쁘게 하고 신바람 나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나’만이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비슷비슷한‘나’가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내가 유일한 존재로 태어난 이유를 찾는 것, 이것이 나를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행복은 내가 내 존재의 이유를 찾을 때 시작됩니다. 행복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서 그것에 투신할 때 찾아옵니다. 행복은 인생의 목표를 이루어 갈 때 그 과정에서 찾아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이웃과 세상에 도움이 될 때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이 세상에 의미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클리저는 팔이 없이 호른을 연주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클리저는 예수님께서는“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20 참조) 하고 말씀하신 그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클리저의 연주를 보는 동안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 …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5)


이 말씀을 통해서 편견과 차별이 없는 나라 장애와 불가능이 없는 나라 팔 없이도 호른을 연주할 수 있는 나라가 그분이 지향하는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클리저는 그날 무대에서 눈먼 이들이 보는 세상,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는 그런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 세상은 불평등해 보입니다. 그러나 존재론적으로 인간은 평등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타고난 재능을 찾고 그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실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평등한 것입니다. 클리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했던 노력은 정말 치열했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보통 연주자보다 백배, 천배의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 2023년 1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각자 선택한 수강과목은 여러분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며 이것이 합쳐져 여러분의 미래가 됩니다. 호른 연주자 클리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력했던 그 노력처럼 이번 학기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우리 대학에서 나를 찾고 기쁨과 희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